Twitter에 올린 시詩와 그림畵을 모아서 책冊 펴낸 허허당 스님 이야기

2024. 6. 16. 11:502024.06.01 NEW POST

트위터(Twitter)에 올린 시(詩)
그림(畵) 모아서 책(冊) 펴낸 허허당 스님 이야기

 

Now ~ Let's start Story Surfing!

 

이 글은 저 NAMDEOKYUSAN이 존경하고 추존하는 허허당 스님과 관련된 이야기들 입니다.                  따라서 2012.08.02.NAMDEOKYUSAN의 Daum BLOG에 게시가 되었던 글을 다시한번 게시하고 있습니다. 현재(2024년) 허허당 스님은 사찰寺刹도 없고 시주施主도 받지 않습니다. 그저 바람(風)처럼 구름(雲)처럼 떠다니며 사람들과 그림으로 온기溫氣를 나누시고 계십니다.

허허당(虛虛堂) 스님은 이 휴유암(休遊庵)에서 7년째 머무르며 선화(禪畵)를 그리고 있다. 2년 前부터는 산중의 생활속에서 명상(冥想)을 담은 시詩와 그림畵을 트위터(Twitter)에 올리고 있다. 팔로워(Follower)가 2만여명이 넘는다.

 

 

경북 포항시 죽장면 비학산(飛鶴山.764m) 자락의 산골 마을. 선화가(禪畵家)인 허허당(虛虛堂) 스님이 거처하고 있는 휴유암(休遊庵)을 2012-08-01 찾았다. 이 휴유암(休遊庵)은 36제곱미터(약 11평)짜리 단칸방으로 이 곳의 이름은 ‘쉬면서 노는 암자’라는 뜻이다.                                                                       대형 화폭에 부처상이 그려져 있는 작은 방에는 그림 도구와 찻 잔 그리고 이불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제게 절(刹)이 있느냐, 화실(畵室)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다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단칸방인 휴유암(休遊庵)에서 명상을 하면 선방(禪房)이 되고, 그림을 그리면 화실(畵室)이 되며, 누우면 아늑한 침실(寢室)이 되기 때문입니다.
허허당(虛虛堂) 스님은 이 휴유암(休遊庵)에서 7년째 머무르며 선화(禪畵)를 그리고 있었다.                2년 전부터는 산중의 생활속에서 명상을 담은 시(詩)와 그림(畵)을 트위터(Twitter)에 올리고 있다.    팔로워(Follower)가 2만 명이 넘는다. 트위터(Twitter)에 올린 시(詩)와 그림(畵)이 최근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 라는 책으로 발행이 되었다. 

 

 

 

허허당(虛虛堂) 스님은 산중의 생활속에서 명상을 담은 시(詩)와 그림(畵)을 트위터(Twitter)에 올리고 있다. 팔로워(Follower)가 2만 명이 넘는다트위터(Twitter)에 올린 시(詩)와 그림(畵)이 최근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 라는 책으로 발행이 되었다.

 

 

 

허허당 스님의 作 <그리움에 사무친 소녀> -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선재동자와 같이 동네에서 만난 사람들을 순수한 꿈을 지닌 소년.소녀 동자상으로 표현하신 그림들이 스님께서 집필하신 책에 실려 있다.

 

 

허허당(虛虛堂) 스님은 1984년 붓을 잡은 이후 1.일상속에서나 수행중에서 깨달은 것들 2.여행 중에서 느낀 것들을 그림 속에 담아내고 또 이를 전시회나 SNS를 통해서 대중들과 소통하고 계셨다.
일상적인 스트레스(Stress)에서 벗어나고 싶거나 위로(慰勞)가 필요한 당신이라면 허허당(虛虛堂) 스님의 작품을 감상하며 잠시나마 휴식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허허당(虛虛堂) 스님의 글과 그림은 상처받은 TISTORY님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무언(無言)의 마력(魔力)이 있습니다.

스님의 편안한 그림과 짤막한 글귀 속에서 우리들은 왜 나를 남과 자꾸 비교하게 되는지, 우리는 무엇을 향하고,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 것인지, 왜 가끔 나에게 공허함이 몰려오는 것인지를 생각하며 스스로의 자아(自我)를 깨닫게 될 것이다.

 

 

 

허허당(虛虛堂) 스님은 “요즘 스님들이 집필하신 책이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까닭은 스님들이 잘났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라며 "세상이 워낙 각박하다 보니까 내가 느껴보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 이라고 말했다.

 

'불이 나면 꺼질 일만 남고 상처가 나면 아물 일만 남는다.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
책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 시(詩)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위로(慰勞)를 받았다며 공감을 표시했다.
허허당(虛虛堂) 스님은 “디지털 사이버 공간도 생명의 세계”라고 하였다.
트위터(Twitter)를 통해서 내가 그들의 아픔에 반응하고, 산중의 고요함과 청정함을 전해주면고통속에서 허덕이는 마음의 상처를 상상만으로도 조그만 위로(慰勞)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올리는 글 이랍니다.

 

 

 

1974년 열여덟의 나이로 해인사(海印寺)에서 출가한 허허당 스님은 향곡(香谷) 스님 문하에서 수행하던 선승(禪僧)이었다. 1983년 지리산 벽송사 방장허원에서 문득 깨달음을 얻어서 본격적으로 선화(禪畵)를 그리기 시작했다.

 

 

학(鶴)들의 춤(舞)을 그린 선무(禪舞), 허허당(虛虛堂) 스님은 “단번에 깨닫는 ‘돈오돈수(頓悟修)’ 선(禪) 수행법과 같이, 붓을 던지듯이 그려내는 새(鳥)의 날갯짓은 굉장히 자유롭고 통쾌하다”고 말했다.
1974년 열여덟의 나이로 해인사(海印寺)에서 출가한 스님은 향곡(香谷) 스님 문하에서 수행하던 선승(禪僧)이었다.
1983년 지리산 벽송사 방장허원에서 문득 깨달음을 얻어서 본격적으로 선화(禪畵)를 그리기 시작했다 한다. 스님은 “도(道)는 결코 찾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모든것을 비워서 버리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다"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래서 ‘비고 빈 집’이란 뜻의 ‘허허당(虛虛堂)’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부처님의 8만4000개 법문(法文)에 담긴 깨달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붓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림 실력 부족으로 6, 7년간 엄청나게 방황을 하였고 그 지독한 ‘사무침’이 쌓이니까 붓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고 말했다.

 

 

 

허허당(虛虛堂) 스님 作 - <쳔년의 세월을 씻고 '순결한 성전'> 이다. 허허당 스님은 사람들에게 "인생(人生)은 일하는 것이 아니라 노(休)는 것이다. 한바탕 멋지게 놀다 가라"라고 역설했다.

 

 

허허당(虛虛堂) 스님께 그림은 생명을 노래하고, 자유를 통쾌하게 느끼는 ‘붓놀음’ 이었다. ‘붓을 던지니 학(鶴)이 난다. 한 소리에 하늘이 깬다(禪僧의 眼-覺) 라시(詩)는 이러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스님의 방(房)에서 별로 어울리지 않는 색소폰(Saxophone)이 눈에 띄었다. 3년여 전부터 교본을 보면서 독학(獨學)으로 배우고 있는 악기(樂器)라고 하였다. 그는 색소폰(Saxophone)을 가리키며“산속에서 자신과 함께 호흡하며 대화를 하고 있는 도반(道伴)”이라고소개를 하였다.
스님은 "몇 년전에 비(雨)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내려서 집 앞 계곡물이 불어나 큰 홍수(洪水)를 당하는 까닭에 마당까지 엄청난 양의 물이 들이닥쳤어요. 물론, 집안에는 그동안 작업을 하여서 보관했던 수백(數百) 점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체절명(絶體命)의 급박한 순간에 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방안으로 들어가 색소폰(Saxophone)을 불면서 모든것을 체념하고 놀았습니다. 그렇게 30분쯤 놀다보니 비(雨)가 그치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셨다.

 

 

 

허허당(虛虛堂) 스님에게 그림은 생명을 노래하고, 자유를 통쾌하게 느끼는 ‘붓놀음’ 이었다.


2024.06.16 .. 허허당(虛虛堂) 스님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면서 NEXT POST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