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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INDEX/생활 이야기

이판사판(理判事判) 이야기

今週의 제 TISTORT 主題 .. 이판사판(理判事判) 입니다.

 

이판사판(理判事判) 이라는 말이 생뚱맞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술집 간판에 쓰이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판사判事가 주인공인 드라마(Drama)의 제목이나 법조인法曹人이 개설한 익명의 카페(Cafe`) 이름에까지 무분별하게 쓰이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또한 <이판사판을 2판4판, 이판死판, 이판새(新)판, 이판저판>으로 변형하여 쓰는 것도 아주 엉뚱하다.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결합돼서 새롭게 만들어진 단어가 이판사판(理判事判) 입니. 이것은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는 지경地境’을 뜻하는데 <이판>과 <사판>이 지니는 본래의 의미(意)와 사뭇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어색하다. 새로운 의미가 어떻게 <이판>과 <사판>의 의미를 통해서 생성될 수 있었는지 매~우 궁금하나 이에 대한 답答은 그렇게 신통치가 않습니다.

 

 

 

 2022.10.22.(토) .. 이판사판(理判事判) :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는 지경地境을 뜻(意) 한다.

 

 

 

 

 

NO.1 : 이판사판(理判事判)의 어원(語源)에 대해서 

 

이판사판(理判事判)은 불교 용어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결합된 것이다. 이판(理判)은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도道를 닦는 일을 말하며, 사판(事判)은 절(寺刹)의 재물과 사무를 맡아서 처리하는 일을 한다.

이판(理判) 사판(事判) 불교佛敎 화엄경(華嚴經)에서 나오는 말이다. 화엄경(華嚴經)은 세계를 이(理)와 사(事)의 두 차원으로 나눠서 설명한다. 이판(理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판단이며, 사판(事判)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 대한 판단이다. 서양 철학의 본질과 현상, 유교 성리학의 이기(理氣)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화엄경(華嚴經)은 ‘이(理)와 사(事)가 둘이 아니다’ 라고 가르치며 원융(圓融)의 세계관을 주창하고 있다.

[1] 이판(吏判)  : 참선, 경전 공부, 포교 등 불교의 교리를 연구하는 스님(僧) 이다. 이판승, 이판중, 공부승 이라고 한다.
[2] 사판(事判) : 절(寺刹)의 산림(山林)을 맡아 보는 스님(僧)으로
사판승, 사판중, 산림승 이라고 한다. 산림이란 절(寺刹)의 재산 관리를 뜻하는 말이다. 산림(産林)이라 불리기도 한다. ‘살림을 한다’의 살림이 여기서 유래가 되었다.

이판(理判)이 있어야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이어지고 사판(事判)이 있어야 가람(伽藍)이 존속하므로 ‘이판’과 ‘사판’은 아주 효율적인 역할 분담이라 하겠다.

이렇듯이 이판사판理判事判이 합성어로 '막다른 궁지에 몰린다'는 뜻이 된 것은 조선시대(朝鮮時代)에 들어와서 부터다. 조선시대 때 스님(僧)은 최하위 신분계층 이어서 <이판>이든 <사판>이든 스님이 되는 길은 인생의 끝이었기 때문에,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에 따라서 승려들이 살아갈 길은 깊은 산속으로 은둔하거나 관가(官家)에서 필요로 하는 잡역雜役에 종사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022.10.22.(토) .. 이판(理判) 사판(事判) <불교佛敎 화엄경(華嚴經)>에서 나오는 말이다.

 

 

 

 

 

NO.2 : 조선시대(朝鮮時代)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과 승려(僧)와의 관계

 

한말韓末의 국학자 이능화(李能和)가 쓴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권 <이판사판사찰내정>에서 다음과 같이 이판승(理判僧)과 사판승(事判僧)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찰에는 이판승과 사판승의 구별이 있었다. 이판(理判)이란 참선하고, 경전을 강론하고, 수행하고, 홍법 포교하는 스님이다. 속칭 공부승(工夫僧)이라고도 한다. 사판(事判)은 생산에 종사하고, 절의 업무를 꾸려나가고, 사무행정을 해나가는 스님들이다. 속칭 산림승(山林僧) 이라고도 하였다. 이판과 사판은 그 어느 한쪽이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판승(理判僧)이 없다면 부처님의 지혜광명이 이어질 수 없었고, 사판승(事判僧)이 없으면 가람(伽藍)이 존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청허(淸虛), 부휴(浮休), 벽암(碧巖), 백곡(百谷) 등의 대사大師들이 이판과 사판을 겸직했다.” 조선시대 때 스님(僧)이 된다는 것은 마지막 신분 계층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했다. 조선시대가 불교佛敎를 억압하고 유교儒敎를 국교로 세우면서 스님은 성城안에 드나드는 것조차 금지가 되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서 스님이 된 것은 <이판>이 되었건 <사판>이 되었건 그것은 마지막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판사판(理判事判)은 곧 '끝장을 의미하는 일' 이었다.

 

 

 

 

조선朝鮮은 건국이념으로 억불숭유(抑佛崇儒)를 표방하였다. 불교佛敎는 하루아침에 탄압의 대상이 되었으며, 승려(僧)는 천민賤民 계급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승려들은 활로를 모색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하나는 사찰寺刹을 존속시키는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불법(佛法)의 맥脈을 잇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 승려들은 폐사(廢寺)를 막기 위해서 기름이나 종이, 신발을 만드는 제반 잡역에 종사를 하면서 사원寺院을 유지시켰는데, 이들을 <사판승(事判僧)>이라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은둔하여 참선 등을 통한 수행으로 불법佛法을 잇는 승려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이판승(理判僧)> 이라 했다. 그런데 이 이판사판(理判事判) 뜻이 전이되어 막다른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을 비유하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게 된 데에는 시대적 상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억불抑佛 정책의 영향으로 승려가 최하 계층의 신분으로 전락이 되었으며 도성都城 출입 자체가 금지가 되었다. 자연히 당시에 승려가 된다는 것은 막다른 인생의 마지막 선택으로 인식이 되었기에 이판理判이나 사판事判은 그 자체로 ‘끝장’을 의미하는 말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NO.3 : 이판사판(理判事判)의 다른 실체(實體)에 대해서 

 

서산대사 휴정(休靜·1520~1604)은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닥치자 "<이판(理判)>은 가부좌를 풀고, <사판(事判)>은 붓과 호미를 던지고 총궐기하여 도탄에 빠진 국가와 백성을 구하라"고 외쳤다. 조선朝鮮의 불교 탄압으로 승려들은 둘로 나뉘었는데, [1] 사찰을 지키기 위해서 궂은 일도 마다않던 <사판승(事判僧)>과 [2] 산중 선방禪房에서 참선으로 불법(佛法)을 잇던 <이판승(理判僧)>이 그들이다. 왕실(王室)의 멸시에도 불구하고 승려들은 국란國亂에 분연히 일어섰다. 이판사판理判事判)은 요즘 '마지막 선택'이란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그 말속에는 역사적으로 이런 절박함과 결연함이 함축되어 있었다.

 

 

 

 2022.10.22.(토) .. <이판>과 <사판>은 그 어느 한쪽이라도 없어서는 아니되는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다. 

 

 

 

 

 

NO.4 : <이판승>과 <사판승>의 길(路)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산속에서 수행修行을 이어간 승려를 <이판승(理判僧)>, 종이를 만들어 공급을 하거나 산성山城을 축조해서 지킴으로 생활을 이어간 승려를 <사판승(事判僧)> 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판승>이든 <사판승>이든 당시 승려(僧)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끝장을 의미하였기에 이판사판理判事判 이란 말이 생겼났다.
조계종
曹溪宗
에서 쫓겨난 한 전직 승려가 조계사 전 주지 @@ 스님 등 승려 8명의 도박賭博 동영상을 폭로한데 이어서 ‘에라~ '이판사판理判事判이다’는 식式으로 前 총무원장 @@ 스님과 봉은사 前 주지 @@ 스님 등이 2001년 서울 강남의 최고급 룸살롱(ROOM SALON)인 ‘신밧드’를 드나들었다고 폭로했다.

신밧드 룸살롱(ROOM SALON) 사건은 불교계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 스님 스스로도 인정했다. 다만 술자리 後 여종업원들과 잠자리가 있었는지는 확인된 것이 없다. 그러나 스님들이 룸살롱에서 승복을 입은 채 여종업원들과 17년산 발렌타인 위스키 3병을 비웠다는 당시 목격자의 증언만으로도 외부인들에게는 큰 충격적 이었다.

 

 

 

 

겉으로는 <이판승(理判僧)>을 <사판(事判僧)>보다 더 높이 받들어 모시는 것 같으면서도 실속은 <사판승(事判僧)>이 챙기는 절寺刹이 많이 있다. 승려 도박 장면이 몰래 촬영돼서 누출된 것도 @@주지 자리를 둘러싼 파벌 싸움이 원인이었다 한다. 그러나 <이판승> <사판승>의 길이 본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이판승(理判僧)>만이 뛰어난 <사판승(事判僧)>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수행修行의 내공內工 없이 절刹 살림만 하였던 승려들이 신도信徒분들의 시줏돈이 귀하고 또 소중한 줄 모르고 도박판을 벌이며 룸살롱(ROOM SALON)을 들락거린 작태作態에 대해서 깊이 자성自省 하고 시금석試金石으로 삼아야 하겠다. 

                                                                                        2012.05.17.新聞 社說에서 발췌하여 NAMDEOKYUSAN 정리했음.

 

 

 

 

 

 

2016.04.09.(토) .. 청계산 매봉(582.5m) TREKKING에서 POSE를 취했습니다.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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